[한국 전통 문화] 경북 지역의 설날 풍습
설날은 대한민국 어디서나 지켜지는 전통 명절이지만, 그 안에 담긴 풍경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다. 특히 경북 지역은 조선시대부터 유교 문화가 깊이 뿌리내려 있어 설 명절의 의미가 남다르고, 아직도 옛 풍습이 꽤 많이 남아 있는 편이다.
이번 설, 나는 경상북도 안동과 의성 일대를 직접 찾아가 설날을 준비하는 풍경부터 차례, 세배, 지역 특유의 민속놀이와 음식 문화까지 생생하게 취재했다. 빠르게 변해가는 시대 속에서도 경북 지역 사람들은 여전히 조상에 대한 예를 잊지 않고, 이웃과 공동체가 함께 명절을 맞이하는 전통을 지켜가고 있었다. 이 글에서는 서울에서는 보기 어려운 경북 설날 풍습의 진면목을 직접 보고 느낀 경험을 바탕으로, 다채로운 설날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한국 전통 기념일 설날 전날부터 움직이는 마을
경북 안동에 도착한 건 설 전날 오후였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장작을 패는 소리와 아궁이에 불을 붙이는 연기가 골목마다 피어오르고 있었다. 현지 주민 박 씨 어르신은 “설날 아침보다 전날이 더 바쁘다카이”라며 웃으셨다. 실제로 경북 지역에서는 설 전날 ‘설맞이 준비’가 가족 단위가 아닌 마을 공동체 단위로 이루어지는 전통이 남아 있었다. 각 집안에서는 전통 한과, 약식, 고사리 나물 같은 명절 음식을 만들며, 이웃 간에도 음식 재료나 도구를 서로 빌려 쓰는 문화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풍경은 아이들이 ‘솔가지’를 주워 마당 한쪽에 쌓아두는 모습이었다. 이는 설날 아침 아궁이의 첫불로 사용하기 위한 것으로, 오래된 믿음에 따르면 이 첫불을 잘 피워야 집안에 복이 든다고 전해진다. 또 어떤 집에서는 직접 지은 제기와 사기그릇을 꺼내 정성스럽게 닦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어르신들은 “그릇이 깨끗해야 조상이 복을 줍니다”라며 여전히 정성과 예를 가장 중요한 설 준비의 핵심으로 여기고 있었다.
아침 5시에 울리는 종소리 – “차례는 해 뜨기 전에 올려야제”
설날 아침, 마을에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정확히 오전 5시. 박 씨 댁의 종이었다. 경북 지역에서는 차례를 해 뜨기 전에 지내야 복이 일찍 들어온다는 오랜 전통이 남아 있었고, 실제로 많은 집들이 이른 새벽부터 조용히 차례를 준비하고 있었다. 서울에서는 보통 오전 8시에서 10시 사이에 차례를 지내지만, 이곳에서는 해가 뜨기 전 조용한 시간이 조상과의 교감에 가장 적합한 시간대로 여겨졌다.
차례상도 인상적이었다. 서울에서 흔히 보는 ‘5열 차례상’과는 달리, 경북 지역은 **‘3열 정통 유교식 상차림’**이 대부분이었다. 첫 줄에는 밥과 탕, 두 번째 줄에는 전과 나물, 세 번째 줄에는 고기와 생선, 과일이 배열되어 있었고, 상 위의 좌우 위치도 엄격히 지켜지고 있었다. 차례를 지낼 때는 제사 지내는 아버지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가족 모두가 숨을 죽이고 집중하고 있었으며, 절을 올리는 순서도 엄격히 연장자부터였다. 이러한 정제된 의례의 긴장감 속에서도, 그 중심에는 조상에 대한 깊은 존경과 가족 간의 유대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마을 전체가 친척같은 세배와 떡국 나눔
차례가 끝난 후, 가족들은 따뜻한 떡국 한 그릇으로 몸을 녹였다. 흥미로웠던 건 떡국에 소고기가 아닌 닭고기가 들어간 점이다. 일부 경북 지역에서는 닭을 ‘재물과 복을 부르는 상징’으로 여겨 설날에는 닭곰탕에 가래떡을 넣어 끓인 떡국을 즐겨 먹는 가정도 많았다. 맛은 담백하면서도 깊었고, 어르신들은 “닭떡국 묵어야 그 해 운이 확 열린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
식사 후에는 집집마다 세배를 하러 다니는 시간이 이어졌다. 서울이나 수도권에서는 이제 가족끼리만 세배를 주고받는 분위기지만, 이 마을에서는 이웃집 어르신에게도 정중히 세배를 올리는 전통이 살아 있었다. 한 집에 들어가면 “아이고, 왔는교~ 복 많이 받아예”라는 인사와 함께 한과나 귤, 떡을 권하는 정겨운 장면이 반복되었다. 마을 전체가 하나의 큰 가족처럼 연결되어 있었고, 세배는 단지 예절이 아니라 마을 공동체를 이어주는 문화처럼 느껴졌다. 요즘 도시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따뜻한 연대감이 그 속에 있었다.
전통놀이부터 탈놀이 공연까지 사라지지 않는 경북의 설 문화
설날 오후가 되자 마을 회관 앞 공터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어른들은 팽이를 돌리고, 아이들은 제기차기와 윷놀이를 즐겼다. 경북 일부 지역에서는 아직도 **‘마을 윷놀이 대회’**가 명절마다 열리고 있었고, 상품도 마련되어 있어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참여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그날 저녁에는 지역 청년들이 준비한 탈놀이 공연도 열렸다. 조상들 앞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복을 기원하는 ‘덧배기 탈춤’은 설날 저녁의 하이라이트였다. 탈을 쓴 청년이 등장할 때마다 아이들이 함성을 질렀고, 어르신들도 흐뭇하게 웃음을 지으며 박수를 보냈다.
이 모든 풍경을 마주하며 느낀 건, 경북 지역의 설날은 단순한 휴일이 아니라, ‘조상-가족-마을’이라는 세 가지 축이 긴밀히 연결된 하나의 거대한 의식이라는 점이다. 차례를 지내는 엄숙한 시간과, 놀이를 즐기는 유쾌한 순간이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그 안에는 정서적 안정감과 공동체적 유대감이 탄탄히 흐르고 있었다. 도시의 설이 ‘휴식과 소비’에 가까워진 반면, 이곳의 설은 ‘관계와 기원, 전승’의 본질이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