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 기념일 & 문화

[한국 전통 기념일] 정월대보름, 왜 부럼을 깨는 걸까?

windsoundstory 2025. 8. 18. 13:28

매년 음력 1월 15일, 정월대보름이 되면 ‘부럼을 깨야 한다’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부럼은 호두, 밤, 잣, 땅콩 같은 딱딱한 견과류를 말하는데, 이날 아침에 이를로 깨먹는 풍습은 오랜 세월을 거쳐 지금까지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단순한 간식으로 보일 수 있는 이 행동은 사실 한 해의 건강을 기원하고, 액운을 막는 의미를 담고 있는 중요한 세시 풍속 중 하나다.

한국 전통 기념일인 정월대보름

그런데 왜 하필 정월대보름에, 또 왜 견과류를 ‘깨는’ 걸까? 이 글에서는 부럼 깨기의 유래와 역사적 배경은 물론, 그 안에 담긴 민간 신앙과 건강 관련 의미, 지역별 특징, 그리고 현대에서 이 풍습이 어떻게 계승되고 있는지를 깊이 있게 다뤄본다. 오랜 세월을 지나 우리 곁에 남아 있는 이 작은 풍습 속에는 조상들의 삶의 지혜와 건강에 대한 소망이 담겨 있다.

 

 

한국 전통 기념일 정월대보름의 부럼 깨기 유래

정월대보름에 부럼을 깨는 풍습은 조선시대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와 조선 시대의 세시풍속을 기록한 문헌에는 **“입춘이 지나고 정월 대보름이 되면, 아침 일찍 일어나 부럼을 깨물며 액운을 막고 복을 부른다”**는 기록이 여럿 남아 있다. 조상들은 해가 바뀌고 음력 1월이 지나면, 그 해의 첫 보름달이 뜨는 날을 매우 신성하게 여겼다. 이는 단순히 달이 가장 둥근 날이어서가 아니라, 자연의 기운이 가장 가득 차는 날이기 때문이다.

부럼을 깨는 행위는 단순한 간식 섭취가 아니라, 상징적 행동이었다. 조상들은 견과류 껍질을 깨는 행위를 통해 그 안에 담긴 액운과 질병의 씨앗을 함께 깨트린다고 믿었다. 특히 부스럼(피부병), 종기, 잇몸병 등의 질환을 막기 위한 기원으로서의 성격이 강했다. 또 어떤 지역에서는 부럼을 깨물며 소원을 말하면 이뤄진다는 속설도 존재했다. 즉, 이 행위는 단순한 식생활이 아니라, 인간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의례적 행위이자 민간신앙의 일종으로 기능해 왔던 것이다.

 

 

 

'이를 튼튼하게 하라’는 실용적 건강 철학

조상들이 부럼을 깨는 이유는 단지 미신적 믿음에 그치지 않았다. 부럼 풍습에는 실제 건강을 지키기 위한 생활 속의 지혜가 녹아 있었다. 당시 의료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사람들은 스스로 건강을 챙기는 방법을 자연에서 찾았고, 견과류는 그중에서도 중요한 식재료였다. 견과류는 단백질, 지방, 미네랄 등이 풍부해 겨울철 영양 보충에 효과적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이(齒), 즉 치아 건강을 위한 실천이었다. 딱딱한 견과류를 씹음으로써 이의 건강을 확인하고, 동시에 잇몸에 자극을 주어 혈액순환을 돕는 효과를 기대했다. 정월대보름에 이를 사용해 ‘부럼’을 깨는 행위는, **“이를 튼튼하게 해주고, 그 해 동안 이가 아프지 않도록 해준다”**는 의미가 있었다. 어릴 적 어르신들이 “부럼 안 깨면 이 썩는다”는 말을 자주 하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실제로 현대 영양학적으로도, 견과류를 규칙적으로 섭취하는 것은 심혈관 건강, 두뇌 건강, 구강 건강에 유익하다는 점에서 전통 풍습이 과학적으로도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역별로 다른 한국 전통 문화, 부럼의 종류와 깨는 방식

전국적으로 부럼을 깨는 풍습은 비슷하지만, 어떤 종류의 견과류를 사용하는지, 어떤 순서로 깨는지, 언제 깨는지는 지역마다 차이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경상도 지역에서는 주로 호두와 밤을 많이 사용하며, 새벽에 깨는 경우가 많다. 이 지역에서는 “부럼은 해 뜨기 전에 깨야 효험이 있다”는 믿음이 남아 있어,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부럼을 깨는 집도 많다.

반면, 전라도 지역에서는 대추, 잣, 은행 등을 함께 섞어 깨는 경우도 있으며, 한 해 동안의 소망을 말하며 깨는 형식으로 이어져 내려온다. 강원도 일부 산간 마을에서는 부럼을 깨는 것 외에도, 깨진 견과류 조각을 뒷산에 던지며 “잡귀야 물러가라”고 외치는 독특한 풍습이 남아 있기도 했다. 또한 어떤 가정에서는 부럼을 다른 가족보다 먼저 깨야 복이 온다는 믿음 때문에, 서로 일찍 일어나기 경쟁을 하기도 한다. 이처럼 부럼 깨기 풍습은 단순 반복이 아니라, 지역과 세대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고 실천되는 살아 있는 문화다.

 

 

 

잊혀가는 한국 전통 풍습, 그러나 여전히 유효한 ‘기원의 상징’

현대 사회에서 정월대보름을 챙기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특히 도시 생활에서는 설날 이후 음력 보름을 따로 챙기지 않는 가정이 많고, 부럼을 준비하는 일조차 낯설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마트에서는 ‘부럼세트’가 명절 특판으로 잠깐 등장하지만, 그마저도 구입률은 해마다 줄어드는 추세다. 그러나 부럼을 깨는 이 전통은 여전히 건강을 기원하고, 공동체의 소망을 나누는 상징 행위로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일부 학교나 전통문화 체험센터에서는 정월대보름 행사로 부럼 깨기 체험을 제공하며, 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 그 의미를 전하고 있다. 또한 SNS에서는 “올해도 부럼 깼어요”라며 인증하는 움직임도 일부 남아 있으며, 견과류의 건강 효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부럼 풍습이 ‘웰빙 문화’와 결합해 재조명되기도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전통을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정신을 지금의 삶에 맞게 계승하는 방식이다. 부럼 깨기의 의미는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그 행위를 통해 한 해의 건강을 빌고, 나쁜 것을 깨트리며, 복을 담아낼 준비를 하는 셈이다. 작은 행동 하나로 시작하는 마음가짐의 변화, 그것이 정월대보름 부럼 풍습의 진짜 가치일지 모른다.